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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그런/51

빅브라더가 움직인다

typistzero 2010. 11. 29. 11:28

전북일보_[청춘예찬]_2010/02/16
빅브라더가 움직인다/ 백상웅


나는 SF를 좋아한다. SF라면 영화, 소설, 만화 가리지 않고 탐닉한다. 특히 미래의 사회를 부정적이고 어두운 세계로 묘사한 디스토피아적인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라 그러는 게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조지 오웰의 「1984」이다. 빅브라더에 모든 것이 통제 되고 있는 사회를 그린 「1984」를 읽으면서 나는 가끔 하늘을 쳐다보거나 핸드폰을 의심하곤 한다. 인공위성이 나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핸드폰으로 누군가 나를 도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하며 조지 오웰이 그린 세계에 푹 빠져든다.

경찰의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수색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빅브라더'를 생각했다. 서버를 빼앗긴 민주노동당은 지금까지 쌓아둔 진보정치의 청결함에 큰 타격을 입을 처지가 되었다. 요즘 말로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이 이런 말일까. 종북주의 논쟁 때, 많은 당원들의 탈당 선언 때도 겪지 않았던 위기가 순식간에 찾아왔다. 서버에는 많은 것이 기록된다. 당원들의 신상명세며, 당비를 낸 계좌, 받은 계좌며, 비밀글로 주고받은 대화들까지 한 정치조직을 움직이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이것을 압수 당한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만 압수당했다고는 하지만 '빅브라더'에게는 그조차도 큰 힘이 되고 무기가 된다.

경찰과 검찰은 전교조와 전공노의 정치활동에 크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가르친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정치적 성향에 대해 강요받지 않았고, 동사무소에 앉아 있는 어떤 직원도 내가 찍어야할 표의 선택을 흔들리게 하지 않았다. 경찰이 진정 노리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조와 전공노의 정치활동과는 별개의 것들이 언론에 뿌려졌다. 당비의 액수와, 정치자금의 이동 등이 밝혀지면서 그것의 쓰임이 불법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빅브라더'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빅브라더'가 누군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안다. '빅브라더'는 통제하기 좋아하고, 획일성을 강조한다. 정치적인 논쟁이나 토론을 좋아하지 않고,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애를 쓴다.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 쯤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 방법에 항의를 하면 나라 발전에 방해가 되는 몹쓸 사람 취급을 한다. 나는 정말 '빅브라더'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세상을 참 손쉽게 다루려는 사람인지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큰 논쟁거리가 된 4대강 문제나, 세종시 문제도 가만보면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몇 해전 갑자기,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선진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빅브라더'의 열정은 끝이 없어 보인다.

우리 사회가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며 정치, 사상 같은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는 사회고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취업이 안된다는 청년들 물음에, 돈이 없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에, 노력 운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수색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일이 아니기에 그냥 놔두고 우리 일에만 열중하고 노력하기에는 그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언젠가는 우리의 정보도 그렇게 넘어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잠재적 불순분자가 되어 '빅브라더'의 발밑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예상이지만, 민주노동당과 관계된 모든 일들이 스톱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알게 모르게 그들을 도왔던 기업가, 재력가들이 그들에게서 발을 뺄지도 모른다. '빅브라더'에게 찍히면 그들의 서버도 압수당할테니까 말이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지만, 앞으로는 일기장을 꼭꼭 숨겨둘 생각이다.


http://www.jjan.kr/society/others/default.asp?st=2&newsid=2010021618570101&dt=2010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