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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 생활자의 수기

절대반지

typistzero 2013. 6. 26. 09:34

 

 

일 년의 절반정도까지 무사히 왔다. 지난 반 년, 사랑을 했고 적금을 꼬박꼬박 부었으며 청탁의 마감은 지켜가며 큰 사고없이 지냈다. 전세를 얻으려는 시도를 잠깐 했지만 금방 접었다. 몇 개의 화분을 들였고, '쑝'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함께 잠을 이루기도 했다. 퇴근을 하면 옥상에 가져다놓은 간이테이블에서 글을 쓴다. 이제 나머지 절반을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앞날을 생각할 때, 두근거리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무사히 잘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된다. 부정적인 건 아니다. 다만 희망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믿으며 하루하루 왠지 정직하게 살고 있는 이 일상이 서글플 뿐이다.

 

어제는 단연코 연예병사들이 화제였다. 위문공연을 끝낸 그들은 사복차림으로 회식을 하고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그리고 일부는 안마시술소를 갔다. 이를 지켜보는 일반 병사들의 박탈감은 누가 위로할까. 연예병사의 이런 행동은 이 사회에 팽배한 권위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내에서 승무원에게 라면을 끓여오라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대기업 간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를 어디서든 남발하려고 한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뿐만이 아니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인식.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보이는 연장자의 권위 등. 이 사회는 절대반지를 수천 개 갖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절대반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를 돌아본다. 글을 쓴다고, 시집 좀 냈다고 혹시 다른 이들에게 귄위를 부리지 않았는지.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힘을 얻고 싶어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 없는 것이 아니다. 분명 나도 힘을 남발한 적이 있다. 학교 후배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시인 선후배들에게. 그리고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N에게. 나는 꼰대가 싫은데, 그리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암담하다. 일 년의 나머지 절반. 몸에 힘을 빼고 살아야겠다. 절대반지는 싫다. 인간으로 살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