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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 생활자의 수기

결혼은 비싸다

typistzero 2013. 6. 30. 23:28


서울에 와서 알게 된 두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 내 애인의 대학 동기 Y와 애인의 선배이자 Y의 애인인 K. 둘은 오래 연애를 한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둘은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계획은 없었다. 그저 연애를 하고 친구들과 만나 즐겁게 노는 게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둘은 저녁이면 자전거를 타고 마포구청역 인근을 달렸다. 막걸리를 마시고 노래방을 갔다. 그게 행복해 보였다. 세상의 간섭을 피해 둘만의 재미를 찾아 사는 것 같았다.

 

둘의 결혼 이야기가 나온 건 갓 봄이 지날 무렵이었다. Y의 부모님이 결혼을 하라며 밀어붙였던 것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했던 K는 당황했다. Y는 때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K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다. 둘은 모아둔 돈이 없었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월급이 적었고, 직장은 불안했다.

결혼을 한다는 것,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작게나마 신혼집을 마련해야 하고, 거기에 들어갈 최소한의 가구를 알아봐야 한다. 단칸방에서 시작하면 된다는 말은 현실성이 없다. 사람이 살만한 방은 비싸다. 과거에 어른들이 경험했던 일은 이제 우리 세대에게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다. 세상은 우리 세대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리부팅되었다.

 

K와 Y는 상견례를 했다. K의 부모님은 결혼을 앞둔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Y의 집에서 집을 계약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주기로 했다. 나머지는 K가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로 마련하기로 했다. 상견례는 끝났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혔다. 둘은 주말마다 집을 얻으러 다녔으나 허탕이었다. 괜찮은 집인데 싸서 관심을 두면 하자가 있는 집이었다. 아마, 앞이 깜깜했을 것이었다.

나 또한 집에 빚이 있다. 아마 나도 집에 도움을 얻어 결혼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K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나를 떠올렸다. K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막막했을 거였다. 그리고 아들에게 아무 것도 못해주는 부모님의 심정을 느꼈을 거였다.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속이 아려올까. 내가 부모의 입장이라면 그랬을 거다. 미안해서, 안타까워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어쩔 수 없음이 나는 아프다.

결혼을 늦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줄어든다. 그리고 노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이런 문제가 사라질까?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사회일까?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순간은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진짜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최저임금, 부족한 일자리, 턱없이 긴 노동시간. 이런 것들이다. 이런 세상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라니. 무책임한 일이다.

 

얼마 전에 K와 Y는 겨우겨우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괜찮은 집을 얻었다. 그 사이트를 지켜보고 있던 애인과 내가 그 집을 알려줬다. 그들은 당장 그 집을 찾아갔고 계약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달에 저축을 얼마하고 얼마를 쓰고 얼마를 빚을 갚는 데 쓰는지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연봉이 얼마나 올라야 빚을 갚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계획은 일단 희망을 담보로 한다. 그 순간만큼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나는 내심 부러웠다. 나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봤다. 얼마를 모으고 얼마를 쓰고 해야 결혼할 때, 집을 쉽게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과하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늦은 나이까지 돈벌이 못하는 아들을 위해 용돈을 보내주던 부모님. 아마 부모님이 진 빚 대부분은 나 때문에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것까지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캄캄해진다. 무능력한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겐 부모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 불효라는 것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저축을 한다. 그리고 그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 더 많이 벌고 싶고 더 독해지고 싶다. 그런데 이리 살기 위해서는 또 남보다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면 남에게 또 상처를 주게 된다. 이게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아무리 조심해도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 이미 조용히 혼자 살기는 글렀다는 것. 그런데도 나는 독해지고 싶다. 그게 싫다.

 

K와 Y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으니까. 언제부터 결혼이란 게 이처럼 고역이 되어버렸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을 하고 앞으로의 삶을 함께한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까. 아직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오직 둘만 경험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위해 열심히 사랑하다.

늦은 저녁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픈 목소리. 나는 그냥 전화를 드렸다고 했다. 그냥, 이라는 말을 어머니께 제일 많이 하는 것 같다. 예전에 용돈이 필요하다고 전화를 할 때도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 그냥, 이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을 내뱉었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랑하는 애인이, 어머니가,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냥.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