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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일거리 삼아 리폼을 하거나 간단한 가구를 만드는 게 재밌다. 최근엔 이사를 하고 옥탑방에서 쓰던 좌식 테이블을 입식으로 리폼했다. 멍청해서 손이 많이 갔다. 덕지덕지 칠해둔 바니쉬를 사포로 몇날며칠 문지르다가 포기, 결국 페인트 리무버를 구입했다. (처음부터 그래야 했다. 리무버는 혁신이다.) 새로 산 소파 높이에 맞춰 다리 네 개를 사다가 연결하고 스테인을 발랐다. 생각보다 소파와 어울려 볼 때마다 나를 칭찬한다.

N이 나에게 주문제작해 만든 테이블도 있다. 평소에 ‘자리관리’를 철저히 하는 N에게 딱 어울리는 테이블이었다. N은 그걸 혁명이라고 했다. 못이나 나사를 쓰지 않고 만들고 싶었지만, 기술도 장비도 없었다. 꺽쇠를 이용해 나무를 연결했더니 꽤 깔끔해보였다. 그러나 자찬일 뿐이다. 내 실력은 형편없다. 더구나 요즘은 DIY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 많아, 인터넷에서 그들이 만든 것과 비교했을 때 내가 만든 것들은 초라할 뿐이다.

 

그런데도 목공을 배우고 싶다. 취미를 갖겠다거나 내 세간은 내가 만들겠다는 낭만적인 생각만은 아니다. 훗날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다. 취미로 할 거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눈대중으로 맘 내키는 대로 만들면 되니까, 굳이 배울 필요는 없다. 목공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작은 빈티지 가구를 만드는 공방을 열고 싶다. 이런 말을 어떤 이에게 했더니, 그는 이렇게 반응했다.

“백시인은 아직 꿈을 꾸고 있네.”

처음에는 놀리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가 (그는 제법 진지한 사람이기에) 유익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잘못 받아들이면 “꿈꾸고 자빠졌네”가 되니까. 꿈이라고는 작가가 되겠다는 것 밖에 없던 내가 사회생활 3년여 만에 변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적금도 붓고, 심지어 들어올 돈과 나갈 돈을 계산하여 할부로 아이패드도 지른다. 미처 상상하지도 못한 계산적인 삶이다. 자연스레 학자금대출 덕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늘 우울하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렇게 한 시절이 오면 한 시절을 야박하게 배신한다. 나의 삼십대가 이십대의 뒤통수를 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지금 내 지상최대의 목표는 전세자금대출 갚기이다.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파주시 법흥리로 적을 옮겼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 꾸는 ‘강남’에서 태어나 ‘북가좌동’에서 유아시절을 보내고 ‘파주’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나보다는 낫다. 나는 여수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지내다가 인천을 찍고 은평구 고시텔에 얼마간 숙박 후 북가좌동 옥탑방에 살다가 파주로 왔다. 그 긴 루트를 지나 전셋집을 마련했다. 뿌듯하지만 대부분이 빚이라 거대한 저금통이라 애써 생각하는 중이다.

한 십 년 후의 내 삶의 지형을 그려본다는 것. 괜찮을 일 같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사실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과학자’가 되겠다거나 하는 꿈과 엇비슷하다. 나는 가끔 농담 삼아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진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말하곤 다니는데, 이건 겨우 간신히 등단을 해 시인이 된 자의 허세일 뿐이다. 십 년 후를 그려본다는 것, 그건 내 자신에게 현재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거다. 

더 이상 내 삶의 변화는 없을 거라고 불과 몇 달 전에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일상을 무료하고 심심하게 바라보지는 않을 것 같다. 최소한의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약소하게나마 꿈을 꾼다. 욕망은 적걸히 있어야 옳다. 산골에 가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한 시절을 배신하더라도 나는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