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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마감한 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상 보는 일이 그만큼 느슨해졌다. 시를 쓸 땐 일상을 떠받치는 구조를 꼼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 구조는 대부분 행복, 분노, 슬픔, 사랑, 이별, 욕망, 노동, 평등…… 이런 식으로 관념적이다. 관념을 해석하는 일에 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회사 일에 치이다보면 바빠 지나칠 때가 많고, 가끔은 너무 평화로운 일상에 취해 대충 침묵할 때도 있다. 머리를 싸매는 일이 귀찮아서, 혹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방심하고 있는 거다. 덕분에 마감(회사 마감)을 끝낸 오늘은 좋은 시를 한 편 쓰고 싶다. 그런 날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쓸 것 같은 날.


김연아가 은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딴 이보다 잘 했는데도. 한쪽에서는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어선을 탔다가 납북된 어부가 남한의 동생을 만났고, 치매로 인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 이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많은 대학생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와중에 박근혜 정부 ‘낙하산 파티’가 시작됐다는 소식도 있다. 나는 오늘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 15분을 기다렸고 출근하자마자 책을 한 권 무사히 마감했다. 무사하다는 것. 나는 무사하다는 것. 그게 다행이라는 것. 이게 자꾸 나를 방심하게 만든다. "나는 무사해." "나는 괜찮아." 이런 말들. 세상과 직접적은 싸우라고 누가 강요하지는 않지만, 자세정도는 취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억울하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2월 중순이다. 따스해지면 호미와 비닐봉지를 하나 챙겨, 쑥이나 냉이를 캐볼까 한다. 그걸로 된장국을 끓여 밥을 후르륵 말아먹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억울하지 않게 살고 싶은 마음과 자꾸 부딪친다.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이 그런 거다. 부딪치는 것들. 부정을 부정하는 것, 긍정의 부정을 긍정하는 것. 기타 여러 변수들까지. 이번에 마감한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생을 마감할 때 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